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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랩 매거진

1994년의 수거함

2026-04-17

 CLAB PICK!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의 시작

화장품 용기는 아름다움을 담는 그릇이다. 그러나 다 쓰고 나면 대부분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플라스틱, 유리, 금속이 뒤섞인 화장품 공병은 분리수거도 쉽지 않다. 1994년, 아모레퍼시픽은 이 문제에 처음으로 손을 댔다. 매장에 공병 수거함을 놓는 것. 단순한 아이디어였지만, 당시 뷰티 업계에서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이었다.

이 캠페인은 '그린사이클(Green Cycle)'이라는 이름으로 30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수거된 공병은 재활용 소재로 전환되어 공원 벤치, 화분, 친환경 제품으로 다시 태어난다. 화장품 브랜드가 '팔고 끝'이 아닌 '쓰고 난 뒤'까지 책임지는 구조를 업계 최초로 만든 사례. 뷰티 업계의 순환경제 표준이 어떻게 시작됐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기업명 아모레퍼시픽
활동명 그린사이클(Green Cycle) 캠페인
기간 1994년 ~ 현재
유형 뷰티 순환경제 / 자원순환
핵심 아이디어 국내 최초 화장품 공병 수거 프로그램을 30년간 운영하며 뷰티 업계 순환경제 표준을 만든 선례 — 소비자가 다 쓴 공병을 매장에 반납하면 재활용 소재로 전환


다 쓴 용기가 매장으로 돌아올 때

화장품을 다 쓰면 무엇을 해야 할까. 대부분의 소비자는 그냥 버린다. 성분이 복잡한 용기를 꼼꼼히 분리하는 일은 번거롭고, 재활용이 가능한지도 불분명하다. 아모레퍼시픽은 그 번거로움을 기업이 먼저 감수하는 방식을 택했다.

소비자가 매장에 가져오기만 하면 된다. 수거는 기업이 맡는다. 재활용도 기업이 책임진다. 단순하지만 이 구조가 30년간 유지되어왔다.


업계 최초, 1994년의 시작

그린사이클은 1994년 아모레퍼시픽의 전신인 태평양화학 시절에 시작됐다. 당시 국내 뷰티 업계에서 제품을 다 쓴 공병을 수거하는 기업은 없었다. 환경 규제도 지금과 달리 느슨했고, 소비자의 요구도 높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모레퍼시픽은 매장에 공병 수거함을 도입했다. 브랜드의 환경 책임이 제품을 파는 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였다.

처음엔 소비자 참여가 활발하지 않았다. 빈 공병을 매장에 가져가는 행동이 일반적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아모레퍼시픽은 캠페인을 포기하지 않았다. 참여 매장을 늘리고, 수거 방식을 개선하며 30년을 이어왔다. 지금은 연간 수백만 개의 공병이 이 경로로 수거된다.


수거된 공병이 향하는 곳

수거된 공병은 어떻게 될까. 아모레퍼시픽은 재질에 따라 분류한 뒤 전문 재활용 업체와 협력해 처리한다. 플라스틱 용기는 재생 원료로, 유리 용기는 건축 자재나 도로 포장재로 전환된다. 일부는 공원 벤치나 화분, 친환경 소품으로 재탄생해 다시 사용된다. 단순히 폐기물을 줄이는 것을 넘어, 자원의 순환 경로 자체를 설계한 것이다.

2021년부터는 온라인 수거 방식도 도입했다. 온라인 쇼핑몰 구매 고객이 택배 박스에 공병을 담아 반송하면 수거해주는 방식이다. 오프라인 매장 방문이 어려운 소비자까지 참여 범위를 넓혔다. 공병 수거라는 아이디어는 같지만, 30년 동안 방식은 계속 진화해왔다.


경쟁사가 따라왔고, 업계 표준이 됐다

아모레퍼시픽이 그린사이클을 시작한 이후, 뷰티 업계의 공병 수거는 점차 보편화됐다. LG생활건강, 이니스프리, 닥터자르트 등 국내외 브랜드들이 공병 수거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아모레퍼시픽이 먼저 30년간 이 시스템을 운영하며 실현 가능성을 증명했기에 가능한 확산이었다.

뷰티 업계에서 공병 수거는 이제 '착한 기업'의 상징이 아니라, 소비자가 브랜드에 기대하는 기본 조건에 가까워지고 있다. 1994년 아모레퍼시픽이 아무도 하지 않던 일을 시작했을 때, 그것이 30년 후 업계 표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30년이 증명한 것 — 지속이 표준을 만든다

그린사이클의 한계도 있다. 수거된 공병의 재활용 효율은 소재 혼합 문제로 여전히 100%가 아니다. 소비자 참여율도 구매량 대비 높지 않고, 매장을 직접 방문해야 하는 불편함은 여전히 참여의 장벽이다.

그러나 그린사이클이 주목받는 이유는 완벽함이 아니라 지속성이다. 30년 동안 끊기지 않고 이어진 캠페인이 만든 신뢰, 그 신뢰가 업계 표준을 바꿨다. 화장품 공병 하나를 다시 매장으로 가져가는 소비자의 행동이 쌓여 순환의 구조가 된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기업의 행동은 화려한 선언보다, 30년의 조용한 지속에서 더 선명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