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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랩 매거진

지구 도둑의 30년

2026-04-03

 CLAB PICK!


오늘 나는 도둑이었다

1994년, 미국 조지아주에 본사를 둔 B2B 카펫 제조업체 인터페이스(Interface)의 CEO 레이 앤더슨은 직원들의 요청으로 책 한 권을 집어 들었다. 폴 호큰의 『비즈니스 생태학(The Ecology of Commerce)』이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자신이 평생 지구를 약탈해온 도둑이었음을 깨달았다. "오늘 나는 도둑이었다(I was a plunderer of the Earth)." 그 고백은 개인의 성찰에서 멈추지 않았다. 앤더슨은 이 경험을 회사 전체의 전환점으로 삼았고, 인터페이스는 이후 30년간 탄소 중립을 넘어 탄소 네거티브를 향해 제조업 구조 전체를 바꾸는 실험을 이어왔다.


환경을 말하는 브랜드는 많지만, B2B 제조업체가 30년에 걸쳐 자신의 산업 표준을 스스로 다시 쓴 사례는 드물다. CSR 담당자들 사이에선 전설적인 이름이지만 국내 미디어에선 거의 다뤄진 적 없는 기업, 인터페이스의 이야기다.


기업명 Interface
활동명 Mission Zero & Climate Take Back
기간 1994년 ~ 현재
유형 제조업 탄소 네거티브 전환 / 기후 행동
핵심 아이디어 CEO의 깨달음 하나에서 출발해 30년간 제조 공정 전체를 바꾼 탄소 네거티브 전환 — 탄소를 줄이는 것을 넘어, 제품 자체가 탄소 저장고가 되도록 설계


지구를 약탈하는 공장이, 지구를 살리는 공장이 되기로 했다

카펫을 만드는 일은 지구를 갉아먹는 일이다. 원유에서 뽑은 나일론 원사, 대량의 물, 수십 년이 지나도 썩지 않는 합성 소재. B2B 제조업체는 소비자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그래서 환경 문제에 책임감을 느끼기도, 변화 압력을 받기도 더 어렵다.


인터페이스는 오랫동안 그 구조 안에 있었다. 그러다 한 CEO의 깨달음이 모든 것을 바꿨다. 이익보다 먼저, 자신이 속한 산업의 방식 자체를 바꾸겠다는 결정이었다.


책 한 권이 CEO를 흔들었다 — "오늘 나는 도둑이었다"

1994년, 레이 앤더슨은 환경에 대해 특별히 관심이 많은 경영자가 아니었다. 인터페이스는 그가 1973년 창업한 이후 세계 최대 상업용 카펫 타일 제조업체로 성장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여름, 영업 직원들이 "우리 회사는 환경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냐"는 고객 질문에 답하지 못하겠다고 토로했다. 앤더슨은 마침 접하게 된 폴 호큰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는 달라졌다. 책은 산업 시스템이 어떻게 지구의 자원을 약탈하고 있는지를 낱낱이 서술하고 있었다. 앤더슨은 자신의 공장이, 자신의 20년이 그 약탈의 일부였음을 인정했다. 가슴에 창이 박히는 것 같았다고 그는 훗날 회고했다. "나는 도둑이었다(I was a plunderer of the Earth)." 이 고백에서 미션 제로(Mission Zero)가 시작됐다.


2020년까지 환경 영향 '0'으로 — 미션 제로의 약속

앤더슨의 선언 이후 인터페이스는 구체적인 목표를 세웠다. '미션 제로(Mission Zero)' — 2020년까지 회사의 환경 영향을 0으로 만들겠다는 약속이었다. 탄소 배출, 폐기물, 용수 사용량, 화석 연료 의존도를 모두 포함하는 목표였다. 당시로선 무모하다는 시선이 쏟아졌다. 카펫을 만들면서 어떻게 환경 영향을 제로로 줄일 수 있냐는 것이었다.


인터페이스는 하나씩 답해나갔다. 재활용 원료로 원사를 만들고, 재생에너지로 공장을 돌리고, 수거-재사용 프로그램으로 제품 수명 주기를 순환시켰다. 2019년, 인터페이스는 미션 제로의 목표를 96% 달성했다고 발표했다. 레이 앤더슨은 2011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세운 목표는, 그의 이름 없이도 계속됐다.


목표를 달성했는데, 멈추지 않았다 — Climate Take Back

미션 제로를 향해 달려오는 동안, 인터페이스는 새로운 질문에 직면했다. '0'이 된다고 충분한가? 이미 대기 중에 쌓인 탄소는 어떻게 할 것인가. 2016년, 인터페이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간 새로운 목표를 발표했다. '클라이밋 테이크 백(Climate Take Back)' — 탄소 중립을 넘어, 지구 기후를 회복시키는 데 기여하는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탄소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탄소를 흡수하고 제품 자체가 탄소 저장고 역할을 하도록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2020년 출시된 'Carbon Negative' 카펫 타일은 생산 과정에서 흡수한 탄소가 배출한 탄소보다 많은 최초의 제품군이 됐다. B2B 제조업체가 자신의 제품을 기후 해결책의 일부로 재정의한 순간이었다. 지구를 덜 해치는 것이 아니라, 지구를 낫게 만드는 기업이 되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B2B 기업이 세상을 바꾸는 법 — 조용하지만 깊게

인터페이스는 소비자를 직접 상대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호텔 로비, 사무실 바닥, 공항 복도에 깔린 카펫을 만든다. 그래서 대중적 주목을 받기 어렵고, 감동적인 캠페인 영상을 내보낼 이유도 없다. 그럼에도 인터페이스의 사례는 30년 넘게 전 세계 CSR과 지속가능경영 교육 현장에서 인용된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기업은 말이 아닌 숫자로, 약속이 아닌 실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왔다. 레이 앤더슨이 시작한 변화는 그가 없는 지금도 계속된다. 한 사람의 깨달음이 기업 문화로 굳어지고, 그 문화가 산업 표준을 흔드는 데는 30년이 걸렸다. 빠르지 않다. 화려하지도 않다. 그러나 세상을 바꾸는 기업의 행동이란, 어쩌면 이런 모습에 더 가깝다.